트윈 베드

박정연 개인전

2023. 9. 1 — 9. 16


《트윈 베드》는 도플갱어의 세 가지 클리셰인 자기 자신과의 사랑, 마주하는 순간 ‘나’를 죽이는 ‘나’,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의 조우를 각각의 뼈대로 삼아 그려진 혼란과 모순, 관음증적 매혹이 뒤섞인 내부 세계를 유랑한다.


𝒯𝓌𝒾𝓃 𝐵𝑒𝒹 is the exhibition that wanders the inner world of confusion, contradiction, and voyeuristic fascination based on the Doppelganger’s three clichés—love with myself, another ‘me’ who kills me the moment I face it, and an encounter between ‘me’ in the past and ‘me’ in the future.


챕터 1     자기 자신과의 사랑
도플갱어 연인들이 서로에게 명령하고 몸의 일부를 보여주고 감상하며 사랑의 대화를 나눈다. 격렬한 욕망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인의 춤은 19세기 여성 히스테리 환자들의 사진에서 기록된 몸짓을 기반으로 한 안무이다. 박제된 몸짓(경련)은 내부에 잠재된 괴물적 에너지와 나르시시즘적 욕망에 대한 분출로 바뀐다.

챕터 2     마주하는 순간 나를 죽이는 나
탐정과 도망자 두 인물이 등장한다. 기이한 추격 속에서 탐정은 마치 마녀와 같은 도망자의 유혹에 점점 빠져들며 흡수된다. 욕망이 자신을 기꺼이 삼키도록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두려움과 혼란, 매혹에 대한 은유가 펼쳐진다.

챕터 3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의 조우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된 화면은 서사의 시공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듯 비춘다. 불법촬영, 감시의 용도로 악용됐던 초소형 카메라의 시선은 내면 세계의 목격자로서 기능한다. 이미지 너머에는 육중한 소음을 내는 소리 괴물이 어른거리고 분열적인 세계들은 하나의 순간으로 향해가는데, 그것은 괴물-도플갱어를 마주하고자 하는 순간이다.


욕망 일지
류다연

 

늦은 저녁의 묵직한 어둠이 선사하는 고립된 안정감에 감싸여, 나는 욕망, 구체적으로는 욕망의 성애(erotics)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욕망은 검은색이다. 모든 것을 어둠으로 흡수하는 검정의 공간은 빛을 반사하는 물체가 존재함으로써 그것의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드러난다. 그것의 가장자리를 발견하거나 완전한 형체를 짐작할 수 없다. 욕망하는 주체와 욕망의 대상 사이 좁혀질 수 없는 공간이 욕망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위계적인 관계성을 수립한다. 박정연의 2채널 영상 〈트윈 베드〉(2023)는 바로 이 검은색에 빛을 투영해 그것이 빨아들여버린 ‘무언가’를 감지하고 욕망의 본질을 파헤쳐 보는 시도이며, 그녀의 시선에 포착되는 것은 다름아닌 ‘나’와 ‘나 자신’이다.

두 화면으로 나눠진 영상 각각에서 공허의 검정 베일을 뚫고 어느 여성의 모습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1부는 미세한 렉과 함께 송출되는 저화질의 웹캠 영상 같은 푸티지가 친밀한 공간성을 자아낸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 의상은 배경과 일체가 되어 그녀들의 몸을 가로질러 부분으로 분리시킨다. 단발의 검은색 머리카락 역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 덩어리의 일부분이 되어 두 여성의 얼굴을 절묘하게 감춘다. 명암의 대조가 극대화된 프레임 안에서 그녀들의 손짓, 발짓, 관절 움직임 하나하나가 더욱 정열적으로 검은색의 품에서 발광한다. 화면을 메우는 검은 입자는 그 행위에 의해 흩어졌다 다시 그녀를 포획하기를 반복하며 그녀가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탐욕에 입체적인 질감을 덧입힌다.

배경과 전경 간의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검은색은 각각의 화면에 배치된 그녀를 연속적인 시공간에 결속시키는 띠처럼 작용하는 동시에, 어떤 것이 삭제되었음을 암시하는 검열로 비춰진다. 생략된 그 무언가는, 검은 줄 뒤에 감춰진 무언가는 그녀의 구애의 춤 시퀀스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청취자의 심장박동수를 제 리듬에 맞추는 권위적인 테크노 트랙에 홀린 듯, 팔다리는 얽히고 꼬이며 몸의 양끝은 하나가 되기 위해 경계면을 맞비빈다. 이 동작들은 19세기 히스테리 여성 환자들의 기록 사진을 참고해 구성한 안무다. 흥미롭게도 ‘히스테리아(hysteri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자궁을 의미하는 ‘히스테라(hystera)’다.

자궁은 몸의 특정 위치에 고정되지 않고, “정액에 굶주린 동물처럼 몸의 곳곳을 떠돌았다고 믿어졌었다. 만약 자궁이 길을 잃어 목 근처에 이를 경우에는 질식, 기침, 그리고 목소리 상실 같은 증상이 발생하며, 흉곽에 갇히게 되면 가슴 통증이나 숨이 가빠지는 등의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기원전 1900년경부터 1950년대까지] 여성과 연관된 모든 증상은 유랑하는 자궁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졌다.”1 자궁이 몸 군데군데를 누비고 있는 마냥, 혹은 유랑하는 자궁 그 자체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제어하지 못하는 양가적인 상태를 체현한다. 자궁이 떠난 자리에 드리운 그림자, 자신을 향한 사랑과 증오가 흘러넘쳐 망상적이고 헤어나올 수 없는 미지의 감각세계로 유인하는 그것이 욕망이다.

반성적인(reflexive) 몸부림으로 요동치던, 노이즈로 숨 막히던 화면은 드넓은 바다 풍경으로 전환한다. 2부에서 그녀는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을 분열시켜, 그녀의 자아가 환자이자 도망자, 탐정이자 추격자의 역할을 각각 수행하도록 한다. 화면의 상당 부분을 바위가 차지하는 해안의 가장자리 저 멀리서 파도가 미미하게 철썩거리며, 아직 물이 차오르지 않은 듯 땅이 유난히 메말라 보인다. 거기 그녀는 온기와 갈망을 주입시킨다. 한 번은 딱딱하고 거친 바위의 표피와 입을 맞추는 순간을 통해, 또 한 번은 화면 너머의 주체와 눈을 맞추는 순간을 통해서다. 그녀들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인지, 카메라 뒤 감독을 바라보는 것인지, 서로 마주 보고 있던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들 사이에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방청객으로서 나에게 보장되었던 범위는 교차하는 그들의 눈빛에 의해 단숨에 허물어진다.

욕망하는 대상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을까? 나는 그녀들의 시선을 피한다. 그녀들의 엇갈리는 추격은 점차 더 깊은 곳을 향해 파고든다. 손전등과 같은 인공 불빛만으로 자신이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짙은 동굴 속으로 그녀가 나아간다. 어둠 속에서, 등 뒤에서 뻗어오는 출처 모를 두 손이 그녀들의 얼굴을 마구 어루만진다. 하지만 그녀들은 만져지기를, 보여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욕망은 여러 시선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의식하는 행위로 가정해 볼 수 있다. 관음적인 응시로서의 욕망을 다루는  〈트윈 베드〉 중 3부는 초소형 카메라의 눈을 차용한다. 박정연은 해당 카메라로 1, 2부에서 등장한 인물과 풍경의 사각지대를 구사한다. 이는 이미 카메라의 사각지대 밖에서 벌어지는 전개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 과거와 미래를 나타낸다. 그리고 녹화되는 시공간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채 유유히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처럼, 사건이 일어나기 전 특유의 불안한 고요함으로 메워진다. 욕망은 절정에 치닫는 어떠한 순간보다는, 예상된 우연의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엽기적인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이로써 박정연은 배경을 전경으로, 대상을 주체로, 절정을 전개로 환원한다.

내가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트윈 베드〉를 나의 단어들로 읊어보기를 연습하며 내 욕망의 윤곽을 ‘여성’을 둘러싼 질퍽한 논의에서 도려내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는 ‘여성’과 ‘그녀’는 지극히 타인의 시선으로 대상화되는 ‘여성,’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여성,’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을 대상화하는 ‘여성,’ 그리고 그 사이 대상과 주체의 여러 관계성을 다루는 체제의 단초로써, 확장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말한다 (물론 이 해명마저 축소적임을 인지한다. ‘여성’이 아닌 다른 주어를 기입해봐도 좋다).

거울 앞에 선 내 반영 대신, 인터넷에 수백 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와 픽셀로 분산되었다 형체를 재조립하는 타인의 이미지 앞에서 나는 죄책감, 공감, 경멸, 애정으로 가득한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다. 나의 끝과 타인의 시작이 명확해 보이다가도 재빨리 불분명해지기에, 나의 관점이나 타인의 시선이나, 여성을 향한 응시(gaze)는 우리 모두의 욕망인 것이다. 당연히 불쾌한 단언이다. 하지만 〈트윈 베드〉가 ‘그녀’와 ‘그녀의 도플갱어’를 통해, 보다 섬세하고 기이한 ‘여성’의 욕망을 표현한 것처럼, 우리는 모든 공간에서 우리 내면의 ‘여성’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내 손에 쥐어진 검은 화면(black mirror)에 어지럽게 맺힌 나의 희미한 반영과 타인이 편집한 ‘그녀들’의 이미지의 잔상이 중첩되어 어렴풋이나마 나의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같다. 그리고 나는 질문한다. 당신의 ‘여성’은 어떻게 생겼는가?

마지막 시퀀스는 질초음파 같은 동굴의 내부를 지나 머리카락에 휘감긴 돌멩이와 흡사한 자세로 바닥에 움츠리고 있는 그녀에게 도달한다. 그녀와 그녀의 작은 죽음이다. 그리고 여기와 저기, 카메라 앞과 뒤, 소비자와 생산자, 나와 당신, 그녀와 그녀의 쌍둥이 사이, 검고 습한 곳에 품어져 유랑하는 자궁의 욕망이 부화하고 있다. 그녀의 속삭임이 다시 들려온다.

 

1 Terry Kapsalis, “Hysteria, Witches, and The Wandering Uterus: A Brief History”, Lit Hub, April 5, 2017, lithub.com에서 인용.


트윈 베드
박정연 개인전

연출, 촬영   박정연
출연   한초원, 현호정
연출 보조   홍영주, 이상민
음악   Sikkal
안무   하은빈
포스터   안수현
비평   류다연
주최, 주관   AlterSide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도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사업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𝒯𝓌𝒾𝓃 𝐵𝑒𝒹
Jungyeon Park

Directed and Cinematographed by   Jungyeon Park
Cast   Chowon Han, Hojung Hyun
Assistant Directors   Katie Sangmin Lee, Yeonju Hong
Music   Sikkal
Choreography   Eunbin Ha
Poster   Soohyun Ahn
Additional Text   Dayun Ryu
Hosted by   AlterSide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