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ft Behind

안상욱

2023. 12. 9 — 12. 10

 


음악가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안상욱

나의 작업실에는 20대 초반부터 모아온 많은 악기들이 있다. 대부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타악기들인데 세계 각지에서 발품을 팔아 모은 소중한 소리의 재료들이다. 오랜 시간 타악기들이 내는 원초적인 소리에 매료되었고 그것을 연주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한때 그 악기들의 장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지만 현재는 그런 마음이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나의 악기를 평생을 연마해도 모자를 텐데 내가 건드려본 악기는 너무 종류가 많았다. 좋은 울림을 가진 악기들에 먼지가 쌓여가고 음악을 연주하는 도구가 아닌 수납장의 컬렉션이 되어가는 시기가 찾아왔다. 최근 몇 년간 음악적 관심사가 타악기에서 전자음악으로 옮겨가면서 악기 위의 먼지는 한층 두터워졌다. 〈Left Behind〉는 작업실에 남겨진 악기들을 바라보던 음악가의 애잔한 시선에서 출발한다.

전자음악에 관심을 가지던 중 전기 신호로 작동하는 동력장치인 솔레노이드를 발견한 것은 밀린 숙제처럼 남겨진 악기들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할 단초를 주었다. 방치되던 악기들에 기계장치를 부착하여 내가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연주와 합주가 가능했다. 다른 이들에게 세션 연주를 부탁할 필요도 없고 나는 오직 현재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망설일 이유 없이 나는 나의 악기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내 악기들이 오직 나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합주를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것은 음악가가 오랫동안 바랐던 꿈은 아닐까?

신이 나서 음악을 만들던 음악가는 잠시 망설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과연 좋은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자동연주장치들의 기원은 1800년대 후반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오케스트리온〉과 1900년대 초 레코드판이 보급되기 이전까지 활발하게 개발되었던 자동 연주 피아노 〈피아놀라〉에 있다. 현대의 엔터테인먼트는 그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간편한 기술들이 많기에 오케스트리온은 오늘날 테마파크에서나 발견되는 구식 장치가 되었다. 본 작품에서 사용된 솔레노이드를 통한 자동 연주장치 역시 최근의 테크놀로지 발전에 비하면 퍽 낡은 기술이다. 만들어진 음악 또한 새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기초적 화성이론에 기대고 있는 조성음악이며 초절정의 기예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본 작업에는 새로운 기술도, 새로운 음악사적 지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본 작업은 무엇을 위한 예술일까?

질문은 다시 음악가의 욕망으로 돌아온다.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나는 음악가로서 내가 배우고 연습했던 것들은 최대한 멋지게 해내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미학적 성취가 불확실할지라도 음악가는 굳이 그걸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욕망은 필연적인 실패를 내포한다. 혼자서 기계회로를 고안하고 수많은 악기들을 컨트롤하는 과정은 매끈한 마스터피스의 구현보다 위태로운 집착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냥 사람이랑 합주를 하지 왜 저런 수고를 하는지’ 처연한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결국 〈Left Behind〉에서 최종적으로 무대 위에 남겨지는 것은 소리 이전에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예술가의 욕망이자 안타까운 실패이다. 그 성실한 수행을 관찰하며 누군가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음악가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곳에 나와 우리가 삶과 음악을 지속하는 단서가 있다고 믿는다.


Left Behind
안상욱

작곡, 악기제작, 연주   안상욱
조명감독   이유진
음향감독   류호건
무대설치   서성협
음악 프로듀서   정중엽
홍보물, 홍보영상 디자인   보이드 스튜디오
촬영   정근호
기술자문   임용주, 서성협
프로듀서   이주연
주최, 주관   안상욱
협력   플랑크톤뮤직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