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ding a Paper Crane

문채원, 오소현, 이유진

조성은 기획

2022. 4. 14 — 4. 30


순서에 따라 접은 종이학의 두 날개를 펼쳐 물에 띄우거나 하늘에 날려보지만, 발끝의 거리를 벗어날 만한 움직임조차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는 혼잡에서 벗어나거나, 나아갈 방향을 예상하기 위해 각종 지침과 정해진 순서들을 따르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 앞에서 원칙의 기능이 온전하게 실현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질병의 시대를 살아가며, 또는 뉴스에서 연이어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들은 언제나 각종 수칙과 조건, 통계와 같은 질서정연한 것들을 동반하고, 대체로 우리는 이것들을 의심 없이 수용한다. 또한 각 개인의 삶에 존재하는 입학-졸업-취업-결혼과 같은 보편적인 단계들은 삶의 가변성이 주는 불안감에 대처하고자 하는 암묵적인 노력일지도 모른다.

 

믿음과 의심의 차이점들에 주목한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 Peirce)는 믿음이 우리의 욕망을 인도하고 우리의 행동을 형성한다고 정의하며, 어떤 사태가 발생할 때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조건 속에 놓이게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언어나 교통표지판 신호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들과 산문들, 즉 우리가 수행하는 많은 사회적 의식들이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며, 여러 기호 체계(systéme signifiant)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번 전시 《Folding a Paper Crane 종이학 접기》에서 세 명의 작가는 본래의 체제를 흩어트리거나 기능을 재정의하고, 오독을 시도함으로써 인과관계를 위한 통상적인 순서에서 이탈한다. 의도한 오류가 유일하게 작동할 수 있는 전시장에서 각 작가들은 규범과 준칙이 지배하는 완벽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기대에서 잠시 멀어져 보고자 한다.

 

무형적인 시스템이 가진 규칙과 제정된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던 문채원은 실수를 방지하고 올바른 사용법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명서나 책자의 기호적 이미지에 주목한다. 작가는 육체적인 행위나 사물의 도구적 기능을 온전하게 전달하여 누군가에게 효율적인 쓰임이 되고자 직관화된 이미지의 체계를 짧은 문장의 단위로 분절시켜 캔버스 안으로 끌어들이고, 명료한 결과에 반(反)하는 모순적인 상황으로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Untitled (Emergency Welcome Kit)〉(2022)는 재난이라는 극적인 상황이 장기화되며 점차 일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환영(welcome)이라는 단어를 통해 모순적으로 나타낸다. 이와 나란히 〈Untitled (Put off the fire with flat flower)〉(2022)는 작가가 겪은 수 차례의 자가격리 동안 불안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수행했던 노동의 결과물이다.

 

오소현은 상품의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존재하는 포장지의 실용적인 목적을 제거하고, 내용물이 상실한 사물을 흔적의 상징물로 재정의한다. 쓰임을 다하고 버려지기 직전, 작가에 의해 수집되어 새로운 껍데기가 씌워진 오브제들은 상품으로 판매되었던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된다. 이로써 관객은 구매를 위해 상품을 들여다보았던 방식으로 사물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흔적들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도록 유도된다. 〈Squeezed Marks〉(2022)에서 작가는 아파트 분리수거 일과 중고 거래를 통해 버려진 치약 통을 수거하여 포장지의 정보를 삭제하였다. 가상의 새로운 브랜드로 명명된 제품은 오직, 사용했던 서로 다른 사용자의 미세한 생활 습관만을 유추할 수 있는 오브제로 변환된다.

 

이유진이 작업을 위해 쏟아낸 반복적인 노동의 시간은 결과물이 대부분 얇고 가냘프다는 점에서 노력과 작업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행위이든, 일반적으로 긴 시간이 할애된 노고의 행위는 이에 마땅한 다음 단계의 행위나 결과를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이러한 믿음을 역행함으로써 결론을 형성하는 노력과 무관한 행동을 지속한다. 반복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만들어진 〈Empty worlds〉(2020-2022)는 무심한 친절에서 오가는 인사치레의 말들을 인쇄하여 오려낸 작업이다. 허공에 떠돌다 쓰임 없이 사라졌던 말들은 작가에 의해 종이 위에 얹혀 바닥 한 켠에 부지런히 쌓아 올려지지만, 본래의 제 모습처럼 부피만 커질 뿐, 아무런 무게를 갖지 못한다. 전시장에 있는 작가의 작업들은 〈미완 (충분히 성실하지 못한 작가)〉(2020-2022)에 빼곡히 적혀 있는 무한한 원주율처럼, 끝맺음 없는 과정으로 성실하게 채워져나갈 것이다.


Folding a Paper Crane
문채원, 오소현, 이유진

기획   조성은
그래픽디자인   파카이파카이